롯데 마트 절대 안 돼 (포항)

“마트 절대 안 돼!” 이겼다고 만세 불렀는데… 10년 후 다 같이 망했습니다. 포항 영일대해수욕장 앞, 1,475억 원을 들여 지은 초대형 건물이 10년 넘게 단 하루도 문을 열지 못한 채 ‘유령 건물’로 방치됐습니다.

대형마트 입점을 결사반대하며 승리를 거뒀던 상인들. 그런데 마트를 막아낸 뒤, 왜 시장까지 함께 무너졌을까요? 시민도, 대기업도, 도시도, 그리고 상인들마저 아무도 웃지 못한 ‘승자 없는 싸움’의 전말을 이야기로 풀어드립니다.

마트 입점을 막기 위한 상인들의 승리가 왜 10년 후 모두의 실패로 돌아갔을까? 이는 눈앞의 경쟁자 대신 거대한 시대의 흐름, 즉 온라인 쇼핑의 변화를 간과했기 때문이며, 변화에 올라타지 못하면 아무리 이긴 싸움도 결국 패배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Contents

마트 입점 저지 승리가 가져온 10년 후의 비극: 포항 두호동 유령 건물 이야기

마트 입점을 막기 위한 상인들의 승리가 왜 10년 후 모두의 실패로 돌아갔는지, 거대한 시대의 흐름을 간과한 결과와 변화에 올라타지 못하면 아무리 이긴 싸움도 결국 패배로 이어진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10년 넘게 문 열지 못한 1,475억 원짜리 초대형 건물

  • 바닷가 명당에 지하 3층, 지상 6층 규모의 초대형 건물이 완공되었으나 10년 넘게 단 하루도 문을 열지 못했다.
  • 이 건물은 매장 면적만 17,000㎡가 넘으며, 웬만한 대형마트 서너 개를 합친 것보다 크다.
  • 완공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텅 빈 채로 방치되어 흉물로 변해가고 있다.
  • 이 이야기는 10여 년 전, 상인들이 마트 입점을 막아내고 승리를 만끽하던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 당시 상인들의 만세는 10년 후 아무도 웃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포항 두호동, 대형마트 입점 계획의 시작

  • 이야기의 무대는 우리나라 산업화의 상징인 포항 북구의 두호동이다.
  • 두호동은 관광객이 몰리는 영일대해수욕장을 끼고 있어 포항의 핵심 상권 중 하나였다.
  • 이 노른자 땅에 2010년대 초반, STS 개발이라는 시행사가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 관광객을 위한 고층 호텔과 대형 판매 시설(쇼핑몰)을 함께 짓는 복합 건물 계획이었다.
  • 총 투자액은 1,475억 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 판매 시설 건물에는 롯데마트가 입점하여 ‘롯데마트 두호점’으로 운영될 예정이었다.

주민들의 기대와 전통 시장 상인들의 절박함

  • 주민들과 상당수 포항 시민들은 롯데마트 입점을 반겼다.
  • 이유 1: 일자리 창출
  • 계산원, 매장 직원, 주차 관리, 청소, 배송 등 수백 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겨 지역 청년과 주부들에게 반가운 소식이었다.
  • 이유 2: 편의성 증대
  • 신선식품부터 생활용품까지 한 자리에서 구매 가능하며, 넓은 주차장과 편리한 쇼핑, 무거운 짐 배달 서비스 등을 기대했다.
  • 이유 3: 선택의 폭 확대
  • 물건 종류가 다양해지고 가격 경쟁이 붙어 소비자에게 이득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 평범한 시민들은 삶의 질이 향상될 것이라 기대하며 집 근처에 크고 깨끗한 마트가 생기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 반면, 전통 시장 상인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반대했다.
  • 포항에는 영남권을 대표하는 초대형 재래 시장인 죽도 시장이 있었다.
  • 수천 개의 점포와 수많은 상인들이 대를 이어 장사해 온 터전이었다.
  • 상인들은 대형마트 입점으로 손님을 다 빼앗겨 굶어 죽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 냉난방, 넓은 주차장, 카드 결제, 깔끔한 포장 등 대형마트의 장점과 비교했을 때 전통 시장은 밀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 상인들에게 이는 단순한 경쟁이 아닌 생존권 문제였다.
  • 이에 상인들은 똘똘 뭉쳐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거리 시위를 벌였다.
  • “지역 상권 죽이는 대형마트 입점 결사반대”, “우리도 먹고 살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청 앞에 모여 반대 서명을 받고 현수막을 내걸었다.

포항시의 결정과 상인들의 승리

  • 찬성하는 주민들과 반대하는 상인들 사이에서 포항시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 대형마트는 돈만 있다고 아무 데나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지자체의 허가가 필요했다.
  • 이 법은 대기업 마트가 무분별하게 들어와 동네 가게와 전통 시장을 죽이는 것을 막기 위해 국가가 조절하려는 목적을 가졌다.
  • 대형마트는 지역 상인들의 의견을 듣고 위원회 심사를 거치는 복잡한 절차를 통과해야 했다.
  • 포항시는 이 법을 근거로 롯데마트 두호점 입점 허가 여부를 결정할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 팽팽한 상황 끝에 포항시는 전통 시장 상인들의 손을 들어주며 롯데마트 입점을 불허했다.
  • 명분은 죽도 시장 등 전통 시장 상인들의 생존권 보호였다.
  • 이 소식에 전통 시장 상인들은 환호하며 “우리가 이겼다”, “대기업을 상대로 당당히 이겨냈다”며 기뻐했다.
  • 이는 마치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듯한 통쾌함이었고, 세상을 다 얻은 기분으로 승리의 만세를 불렀다.

승리 이후, 예상치 못한 결과들

  • 상인들은 마트 입점을 완벽하게 막아내며 원하는 것을 이루었지만, 이 승리는 10년 뒤 재앙의 씨앗이 되었다.
  • 롯데 쇼핑의 입장:
  • 바닷가 노른자 땅에 마트를 열려다 계약까지 해 놨는데 허가가 나지 않자 순순히 물러날 수 없었다.
  • 이미 엄청난 돈이 투입된 사업이었기에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신청했으나 계속 거부당했다.
  • 롯데 쇼핑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무려 5년 동안 일곱 차례에 걸쳐 입점 허가를 신청했지만, 포항시는 그때마다 거절했다.
  • 롯데가 이렇게 매달린 이유는 자리가 탐났기 때문이기도 했고,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쏟아부어 여기서 발을 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 법정 싸움으로 이어진 결과:
  • 일곱 번의 거절 끝에 롯데 쇼핑은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을 제기하며 법의 판단을 구했다.
  • 결과는 포항시의 완벽한 승소였다. 법원은 포항시의 손을 들어주었고, 롯데마트 입점은 완전히 무산되었다.
  • 이로써 상인들의 승리는 법원 판결로까지 확인된 완벽한 승리로 마무리되는 듯했다.

텅 빈 건물과 기괴한 풍경

  • 마트가 들어오지 못하게 되자, 1,475억 원을 들여 지은 초대형 건물은 텅 비게 되었다.
  • 2014년 12월 완공된 이 건물은 겉보기에는 새 건물이었으나, 핵심 입점 예정이었던 롯데마트가 사라지면서 그대로 죽어버렸다.
  • 더 기막힌 것은 바로 옆이었다. 같은 시행사가 지은 고층 호텔(현 라한 호텔)은 2015년부터 정상적으로 영업하며 잘 운영되고 있었다.
  • 같은 자리에 같은 시기에 지어진 두 건물 중 호텔은 멀쩡한데, 바로 옆 마트 건물은 유령처럼 텅 비어 있는 기괴한 풍경이 펼쳐졌다.
  • 관광객들은 이 광경을 보고 “저 큰 건물은 왜 저렇게 허무하게 비어 있냐”며 의아해했다.
  • 시간이 갈수록 건물은 낡아가며 완벽한 흉물이 되었고, 영일대해수욕장의 경관을 해치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 관광도시 포항 입장에서는 매우 민망하고 부끄러운 일이었다.

황당한 상황과 포항시의 애매한 태도

  • 2020년경 지역 언론은 “멀쩡한 새 건물을 왜 5년 동안 방치하느냐”며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 황당한 상황 1: 롯데 쇼핑의 처지
  • 마트 문도 못 열었지만 건물을 빌리기로 계약했기에 장사는 한 푼도 못 하면서 임대료는 계속 지불해야 했다.
  • 5년 넘는 기간 동안 수십억 원에 달하는 임대료를 날린 셈이었다.
  • 이 때문에 오히려 롯데가 가장 억울한 쪽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 황당한 상황 2: 건물 주인의 불분명함
  • 처음 주인은 STS 개발이었으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국민은행, 코람코 펀드 등으로 소유주가 계속 바뀌었다.
  • 나중에는 포항시조차 건물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 포항시의 애매한 태도:
  • 포항시는 건물이 전통 시장 상인들의 생존권에 영향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만 활용되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 컨벤션 센터, 영화관, 음식점 등은 가능하지만, 마트나 아울렛 등은 절대 안 된다고 했다.
  • 이는 이러한 업종이 들어오면 전통 시장 상인들과 격렬하게 부딪힐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 하지만 매장 면적 17,000㎡가 넘는 초대형 건물에 마트나 아울렛이 안 된다면, 영화관 몇 개나 음식점 몇 개로 그 공간을 채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 결과적으로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이 건물에 들어오겠다는 곳이 나타날 리가 없었다.
  • 또한 포항시는 자신들이 건물주가 아니기에 나서서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는 책임 회피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 즉, 처음에는 적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해 마트 입점을 막았지만, 결과로 생긴 흉물에 대해서는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며 발을 빼는 모양새가 되었다.

상인들이 지키려던 전통 시장의 몰락

  • 상인들은 마트를 막아냈고, 롯데는 수십억 원의 임대료를 날렸으며, 시행사는 1,475억 원짜리 건물을 유령 건물로 떠안았다. 포항시는 도심에 흉물을 얻었고, 시민들은 편리한 마트를 잃었다.
  • 하지만 상인들만큼은 큰 이득을 보았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은 달랐다.
  • 마트라는 위협을 제거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 시장과 구도심 상권은 살아나기는커녕 오히려 시들시들 심각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 마트가 없어져도 손님들이 시장으로 돌아오기는커녕,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진짜 적은 따로 있었다: 온라인 쇼핑의 부상

  • 상인들은 싸울 적을 잘못 골랐던 것이다.
  • 상인들은 대형마트가 자신들의 밥줄을 위협하는 진짜 적이라고 굳게 믿었다.
  • 하지만 그들이 마트와 싸우는 동안, 훨씬 더 무섭고 거대한 진짜 적이 조용히 다가오고 있었다.
  • 바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변화, 즉 온라인 쇼핑이었다.
  • 스마트폰 하나로 장을 보는 편리한 시대가 도래했으며, 이는 2010년대 중반부터 무섭게 퍼지기 시작했다.
  • 사람들은 전통 시장은 물론 대형 마트에도 예전만큼 자주 가지 않게 되었고, 소비의 흐름 자체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통째로 이동했다.
  • 연구 결과:
  • 전통 시장을 살리기 위해 도입된 대형마트 의무 휴업 규제(한 달에 두 번 강제 휴무)는 효과가 없었다.
  • 마트가 쉬는 날에 그 손님들이 전통 시장으로 갈 것이라는 단순한 논리는 틀렸다.
  • 국책 연구 기관인 KDI 등 여러 연구 기관의 데이터 분석 결과, 마트 휴업일에 소비자들이 전통 시장으로 옮겨갔다는 증거는 나타나지 않았다.
  • 오히려 마트가 문을 닫으면 소비자들은 온라인으로 주문하거나 지갑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 즉, 마트를 막는다고 해서 그 손님이 전통 시장으로 유입되는 것이 전혀 아니었다. 애초에 소비자들이 고민한 것은 ‘마트냐 시장이냐’가 아니라 ‘오프라인이냐 온라인이냐’였다.
  • 따라서 상인들이 마트를 막아내고 법정 싸움까지 이긴 것은, 정작 자신들을 위협하는 진짜 적에게는 손끝 하나 되지 못한 허무한 승리였다.

포항의 지역 경기 침체와 겹친 악재

  • 포항은 대표적인 철강 도시였으나, 철강 산업이 예전만큼 호황을 누리지 못했다.
  • 지역 경기가 전반적으로 어려워지고, 젊은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로 떠나면서 인구가 계속 줄어들었다.
  • 도시 전체의 활력이 떨어지니 구도심 상권은 더 빠르게 힘을 잃고 가라앉았다.
  • 온라인 쇼핑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지역 경기 침체라는 악재까지 겹치면서 전통 시장은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대형마트들마저 무너져 내리다

  • 상인들이 그토록 막았던 대형마트들이 오히려 몇 년 뒤 스스로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기 시작했다.
  • 홈플러스를 비롯한 대형마트들이 심각한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줄줄이 폐점하는 충격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 온라인에 밀려 쓰러진 것은 비단 전통 시장만이 아니었다. 거대한 대기업 대형마트들조차 거센 온라인 쇼핑 물결 앞에서는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 이는 상인들이 5년 넘게 싸웠던 골리앗이, 사실은 굳이 힘 빼고 싸우지 않아도 몇 년 지나면 제 발로 무너져 떠날 운명이었음을 의미한다.
  • 애초에 막을 필요조차 없었던 상대와 모든 것을 걸고 싸운 셈이며, 그 사이 진짜 적에게는 아무런 방비도 하지 못했다.

유령 건물의 최종 운명과 새로운 계획

  • 10년 넘게 흉물로 방치되던 문제의 유령 건물은 결국 새로운 활용 방안을 찾았다.
  • 2022년, DS 네트워스 계열사가 건물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49층짜리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아파트 711가구, 오피스텔 40실)를 짓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 2023년 말, 포항시는 이 신축 계획을 정식으로 승인했다.
  • 1,475억 원이 들었던 새 건물을 단 하루도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 허무하게 부수게 된 것이다.
  • 하지만 이 주상복합 계획마저도 앞날이 밝지만은 않다.
  • 포항은 현재 아파트가 엄청나게 남아도는 도시이다.
  • 최근 몇 년간 새 아파트가 물밀듯 쏟아졌고, 어느 해에는 만 가구가 넘게 공급되기도 했다.
  • 전문가들은 이것이 적정 물량의 두 배를 훌쩍 넘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분석한다.
  • 그 결과 미분양이 산더미처럼 쌓여 3천 가구가 넘었고, 할인 분양이나 전월세 전환으로 겨우 소화하는 형편이다.
  • 이런 상황에서 최고층 아파트 700여 가구를 새로 짓는 것이 성공할지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승자 없는 싸움의 교훈

  • 이 치열한 싸움에서 최종적으로 누가 이겼는가?
  • 시민들: 그토록 원했던 편리한 마트를 단 한 번도 갖지 못했고, 좋은 일자리 수백 개도 함께 잃었다.
  • 롯데: 장사 한번 시작도 못 하고 빈 건물 임대료로만 생돈 수십억을 태웠다.
  • 시행사: 1,475억 원을 들여 지은 건물을 유령 건물로 떠안았다가 결국 허무하게 부수게 되었다.
  • 포항시: 가장 아름다워야 할 바닷가 한복판에 10년 넘는 세월 동안 거대한 흉물을 안고 살아야 했다.
  • 전통 시장 상인들: 마트를 막아냈지만 시장은 끝내 쇠락했고, 진짜 무서운 적이었던 온라인 쇼핑 앞에서는 손 한번 제대로 못 써보고 당했다.
  • 결론적으로 승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가 조금씩 혹은 아주 크게 읽기만 한 상처뿐인 싸움이었다.
  • 서류상으로는 누군가 승리 도장을 찍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모두가 울고 웃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씁쓸한 결말이었다.
  • 상인들의 절박함은 이해하지만, 진짜 문제는 싸우는 방향이었다.
  •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막는 데만 온 힘을 쏟을 때, 세상이 어디로 거대하게 흘러가는지를 놓치면 그 힘겹게 얻은 승리는 아무 의미가 없어질 수 있다.
  • 이 포항 두호동의 쓸쓸한 유령 건물이 들려주는 교훈은 이것이다: 지키고 싶은 소중한 것이 있을 때, 진짜 싸워야 할 상대는 눈앞의 경쟁자가 아니라 거대한 시대의 흐름일지도 모른다.
  • 마트를 억지로 막는다고 시장이 저절로 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거대한 변화의 파도에 함께 올라탈 것인가를 고민했어야 했다.
  • 온라인이 밀려올 때, 전통 시장도 배달 서비스 도입, 온라인 주문 적극 수용, 젊은 손님 유치 방안 모색 등 시대에 발맞춰 변화했어야 했다.
  • 실제로 시대에 적응하여 살아남은 명물 시장들도 존재한다.
  • 결국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것은 경쟁자를 밀어낸 사람이 아니라 변화에 유연하게 올라탄 사람이다.
  • 그 텅 빈 건물이 던지는 묵직한 질문은 “당신이 그토록 소중하게 지키려는 그것, 정말 지금 그 방법이 맞습니까?”이다.
  • 눈앞의 작은 상대와 싸우느라 정작 뒤에서 밀려오는 진짜 중요한 흐름을 놓치는 일이 우리 주변에서도 벌어지고 있을지 모른다.
  • 이 이야기가 세상을 조금 더 넓고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관련 배경지식

이 이야기는 포항 두호동에서 벌어진 롯데마트 입점 반대 사건과 그로 인해 발생한 10년 후의 복합적인 결과를 다룹니다. 이 사건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몇 가지 배경지식을 살펴보겠습니다.

거대 자본의 충돌: STS개발과 롯데쇼핑

이 사건의 시작에는 STS개발이라는 시행사와 롯데쇼핑이라는 대기업이 있습니다. STS개발은 포항의 아름다운 해수욕장 앞에 1,475억 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여 호텔과 대형 판매 시설을 건설하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 판매 시설에 롯데쇼핑이 입점하여 ‘롯데마트 두호점’을 열 예정이었죠.

  • STS개발과 롯데쇼핑의 관계:
  • STS개발은 건물을 짓고, 롯데쇼핑은 그 건물을 임대하여 마트를 운영하려 했습니다. 마치 큰 집을 짓고 세입자를 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 이 거대한 프로젝트에는 1,475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이 투자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동네 가게가 아닌, 지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규모의 투자였음을 의미합니다.

전통 시장 보호를 위한 법적 장치: 유통산업발전법

포항시는 롯데마트 입점을 7차례나 반려하며 강력하게 제지했습니다. 그 근거는 바로 유통산업발전법이라는 법률이었습니다. 이 법은 대형마트와 같은 대규모 유통업체가 무분별하게 들어서면서 전통 시장이나 소규모 상점들이 피해를 보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 유통산업발전법의 역할:
  • 이 법은 대형마트가 새로 문을 열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의 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신고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상인들의 의견을 듣고 심의를 거치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 이는 마치 게임에서 새로운 캐릭터를 출시하기 전에 여러 단계의 검증을 거치는 것과 같습니다. 지역 경제에 미칠 영향을 신중하게 고려하겠다는 뜻이죠.
  • 이 법 덕분에 포항시는 전통 시장 상인들의 생존권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롯데마트 입점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 법의 실효성과 현대 유통 환경에 대한 적합성에 대한 논의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포항 경제의 심장: 죽도시장

롯데마트 입점 반대 시위의 중심에는 죽도시장이 있었습니다. 죽도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을 넘어, 포항 경제의 상징이자 수많은 상인들의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 죽도시장의 중요성:
  • 죽도시장은 영남권을 대표하는 초대형 전통 시장으로, 특히 신선한 해산물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포항에 가면 꼭 들러야 할 명소 중 하나로 꼽힙니다.
  • 수천 개의 점포가 밀집해 있고,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세대에 걸쳐 상인들이 대를 이어 장사를 해온 곳입니다. 이곳은 포항 시민들의 삶과 함께해 온 역사적인 공간입니다.
  • 이러한 죽도시장의 상인들에게 대형마트의 등장은 생존권이 걸린 문제였습니다. 자신들의 생계가 위협받을 것이라는 절박함 때문에 강력하게 반대했던 것입니다.

10년 후, 포항시의 딜레마: 공급 과잉과 주상복합 계획

롯데마트 입점이 무산된 후, 1,475억 원을 들여 지어진 건물은 10년 넘게 텅 빈 채로 방치되었습니다. 이른바 ‘유령 건물’이 된 것이죠. 결국 이 건물은 철거되고 그 자리에 49층짜리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설 계획입니다. 하지만 이 계획마저도 포항시가 처한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 포항시의 부동산 시장 상황:
  • 포항시는 현재 아파트 공급 과잉이라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인구 규모에 비해 너무 많은 아파트가 지어졌고, 이로 인해 미분양 물량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대규모 주상복합 아파트 건설은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마치 이미 배가 부른 사람에게 또 음식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 이 건물은 짓는 데 1,475억 원이 들었지만, 결국 제대로 사용되지 못하고 철거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막대한 사회적, 경제적 비용을 보여주는 안타까운 사례입니다.

이러한 배경지식들을 통해 우리는 단순히 마트 입점 찬반 논쟁을 넘어, 복잡하게 얽힌 경제적 이해관계, 법률적 해석, 지역 사회의 역사와 현재가 어떻게 한 사건에 영향을 미치는지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트 절대 안 돼!” 외쳤던 포항, 10년 후 모두가 망했다?

바닷가 가장 좋은 자리에 1,475억 원을 들여 지하 3층, 지상 6층의 초대형 건물이 웅장하게 서 있습니다. 매장 면적만 17,000제곱미터가 넘는, 웬만한 대형마트 서너 개를 합친 것보다 훨씬 거대한 건물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이 어마어마한 건물이 완공된 지 10년이 넘도록 단 하루도 문을 열지 못했습니다. 손님이 들어간 적도, 계산대에 불이 켜진 적도, 영업 시작 안내 방송조차 나온 적이 없다고 합니다. 완공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마치 유령처럼 텅 빈 채로 서 있기만 한 것이죠.

새 건물이 이렇게 흉물로 변해가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의아해합니다. “저 멀쩡한 건물을 왜 저렇게 놀리는 걸까?” 관광객이 몰리는 해수욕장 바로 앞에, 1,500억 원에 가까운 돈이 들어간 건물이 10년 넘게 텅 비어 있다는 사실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머리띠를 질끈 동여맨 사람들이 결사반대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왔던 그날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결국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고 “우리가 이겼다!”며 만세를 불렀던 그날 말이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날 그들이 외쳤던 만세는 결국 자기 발등을 찍는 도끼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기긴 이겼는데, 10년 뒤에는 아무도 웃지 못하는 결말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image

포항, 철강 도시에서 관광지로

이야기의 무대는 경상북도 포항입니다. 포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 포스코, 즉 포항제철일 것입니다. 우리나라 산업화의 상징이자 한때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었던 도시죠. 철강 하나로 도시 전체가 먹고 살았고, 덕분에 인구 50만 명이 넘는 중견 도시로 자리 잡았습니다. 돈이 활발하게 돌고 사람이 구름처럼 몰리는 도시였습니다.

그런 포항 북구에 두호동이라는 동네가 있습니다. 바로 이곳이 오늘 이야기의 핵심 무대입니다. 두호동은 영일대 해수욕장을 끼고 있습니다. 포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대표 해변이고, 여름이면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비는 곳이죠. 밤이 되면 바다 위로 화려한 조명이 켜지고, 해변을 따라 카페와 횟집이 늘어서 있는, 말하자면 포항에서 가장 번화한 상권 중 하나입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이곳을 ‘최고의 노른자 땅’이라고 표현합니다.

1,475억 원의 야심찬 계획, 그리고 롯데마트

이 노른자 땅에 2010년대 초반, 한 시행사가 야심 찬 계획을 세웁니다. 바로 STS 개발이라는 회사였는데요. 이 회사는 영일대 해수욕장 바로 앞에 대형 복합 건물을 짓기로 한 것입니다. 계획은 이랬습니다. 한쪽에는 관광객이 묵을 수 있는 고층 호텔을 짓고, 그 옆에 붙여서 커다란 판매 시설, 즉 쇼핑을 할 수 있는 대형 상가 건물을 세우는 것이었죠. 바닷가 명당에 호텔과 쇼핑몰이 나란히 붙어 있는 그림은 상상만 해도 사람이 엄청나게 몰릴 것 같지 않습니까? 여기에 투입된 돈이 무려 1,475억 원입니다. 요즘 물가로도 엄청난 돈이지만, 10여 년 전이라면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의 투자였죠.

그리고 이 판매 시설 건물에 들어오기로 한 곳이 바로 우리가 모두 아는 롯데마트였습니다. 정확히는 롯데쇼핑이 STS 개발로부터 이 건물을 통째로 빌려 ‘롯데마트 두호점’이라는 간판을 걸고 문을 열 계획이었어요. 대기업 대형마트가 바닷가 명당에 들어온다니, 게다가 옆에는 번듯한 호텔까지 있다니 얼핏 보기에는 좋은 일 같지 않습니까? 일자리도 새로 생기고 동네도 활기를 띠고 관광객도 더 몰릴 테니까요.

주민들의 환영과 상인들의 절규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두호동 인근에 사는 주민들과 상당수 포항 시민들은 롯데마트가 들어온다는 소식을 오히려 반겼습니다. 이유는 아주 현실적이고 단순했습니다. 첫째는 바로 일자리였습니다. 대형마트 하나가 들어오면 계산원부터 매장 직원, 주차 관리, 청소, 배송까지 수백 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기니 지역 청년들이나 주부들에게는 정말 반가운 소식이었죠. 둘째는 편의성이었습니다. 큰 마트가 하나 생기면 장보기가 얼마나 편해집니까? 신선식품부터 생활용품, 옷, 전자제품까지 한 자리에서 다 살 수 있고, 주차장도 넓고 카트 끌고 편하게 쇼핑하고 무거운 짐은 배달까지 해주니까요. 셋째는 선택의 폭이었습니다. 물건 종류가 다양해지고 가격 경쟁이 붙으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무조건 이득이거든요. 한마디로 평범한 시민들 입장에서는 대형마트는 삶의 질이 확 올라가는 일이었습니다.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집 근처에 크고 깨끗한 마트가 하나 생긴다는데 그걸 마다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주말에 가족들 데리고 나가서 장도 보고 밥도 먹고 구경도 하는, 요즘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누리는 그 일상 말이죠. 두호동 주민들도 딱 그런 행복한 그림을 기대했던 겁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에는 반대편이 있는 법이죠. 이 소식을 듣고 얼굴이 하얗게 질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전통시장 상인들이었습니다. 포항에는 죽도 시장이라는 아주 유명한 전통 시장이 있습니다. 그냥 평범한 동네 시장 수준이 아닙니다. 영남권을 대표하는 초대형 재래시장이고, 특히 싱싱한 해산물로 전국의 이름이 널리 나 있는 곳이죠. 포항에 오면 죽도 시장 가서 회 한 접시 꼭 먹고 가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수천 개의 점포가 다닥다닥 붙어서 수많은 상인들이 대를 이어가며 장사를 해온 터전입니다. 이 죽도 시장을 비롯해 포항 곳곳의 전통 시장 상인들에게 대형마트의 등장은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상인들의 논리는 이랬습니다. “대형마트가 들어오면 손님을 다 빼앗길 거고, 그러면 우리는 다 굶어 죽는다.” 생각해 보면 정말 그럴듯한 걱정이었습니다. 냉난방 빵빵하게 나오고 주차장 넓고 카드 결제 편하고 깔끔하게 포장된 물건이 진열된 대형마트가 들어서는데, 반면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주차하기도 불편한 전통 시장은 밀릴 수밖에 없잖아요. 소비자들이 어디로 몰리겠습니까? 당연히 마트 아니겠느냐는 거였죠. 그러니 상인들 입장에서는 이건 단순한 경쟁이 아니라 목숨이 걸린 생존권 문제였던 겁니다. 그래서 상인들은 똘똘 뭉쳤습니다.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지역 상권 죽이는 대형마트 입점 결사반대! 우리도 먹고 살자!” 이런 구호를 외치면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습니다. 시청 앞에 모여서 목소리를 높이고 반대 서명을 받고 현수막을 크게 내걸었죠.

image

법의 심판대 위에 오른 롯데마트

자, 여기서 상황을 한번 정리해 볼까요? 한쪽에는 마트 들어오면 편하고 좋다며 찬성하는 주민과 시민들이 있습니다. 다른 한쪽에는 마트 들어오면 우리 다 죽는다며 결사 반대하는 전통 시장 상인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둘 사이에서 엄청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포항시, 즉 행정을 책임지는 시청이었죠.

여기서 우리가 하나 꼭 알아둬야 할 게 있습니다. 대형마트라는 게 그냥 돈만 있다고 아무 데나 뚝딱 지어서 문을 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유통산업발전법’이라는 법이 있습니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쉽게 말하면 이런 겁니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나 큰 슈퍼마켓이 아무 데나 막 들어오면 동네 작은 가게들이나 전통 시장이 다 죽어버릴 수 있으니, 국가가 나서서 좀 조절하겠다는 법이죠. 그래서 대형마트가 새로 문을 열려면 그 지역 지자체, 그러니까 시청이나 구청에 ‘대규모 전포 개설 등록’이라는 걸 신청해서 정식으로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냥 신고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지역 상인들 의견도 듣고 위원회의 심사도 거치고, 이런 복잡한 절차를 통과해야 하는 거죠.

바로 이 법이 오늘 이야기의 결정적인 열쇠가 됩니다. 롯데마트가 문을 열려면 포항시의 허가가 반드시 필요했고, 포항시는 이 법을 근거로 허가를 내줄지 말지를 결정할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주민들은 찬성하고 상인들은 반대하고, 그 사이에서 시청이 저울질을 하는 상황이라 정말 팽팽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포항시는 최종 결정을 내립니다. 전통 시장 상인들의 손을 들어준 거예요. 죽도 시장을 비롯한 전통 시장 상인들의 생존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포항시가 내세운 명분이었습니다. 즉, 롯데마트 두호점의 입점을 허가해 줄 수 없다는 것이었죠.

이 소식이 전해지자 전통 시장 상인들은 환호했습니다. 머리띠를 벗어던지고 서로를 얼싸안았습니다. “우리가 이겼다! 대기업을 상대로 우리가 당당히 이겨냈다!”며 정말 기뻐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 같은 통쾌함이었을 겁니다. 거대한 대기업, 그 롯데를 상대로 평범한 시장 상인들이 뭉쳐서 승리를 거뒀으니까요. 그날만큼은 정말이지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을 겁니다. 만세를 불렀습니다. 승리의 만세를요.

텅 빈 건물, 그리고 씁쓸한 현실

그런데 말입니다. 바로 여기서부터가 진짜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상인들은 자신들이 원하던 걸 정확히 손에 넣었습니다. 마트를 완벽하게 막아냈으니 원하는 건 다 이뤘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 완벽해 보였던 승리가 10년 뒤 아무도 웃지 못하는 재앙의 씨앗이 되고 말았을까요? 승리에 취한 상인들이 만세를 부르는 동안, 반대편에서는 전혀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롯데쇼핑이었죠. 대기업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세요. 바닷가 노른자 땅에 마트를 열려고 계약까지 다 해 놨는데 시청이 허가를 안 내 준다니, 이건 그냥 순순히 물러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엄청난 돈이 투입된 사업이었고, 걸린 돈이 한두 푼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 롯데쇼핑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신청했어요. 그런데 또 반려당하자, 그럼 또 신청했고, 그런데 또 거부당했습니다. 여러분, 롯데쇼핑이 이 두호점 하나 열겠다고 몇 번이나 신청했는지 아십니까? 무려 일곱 번입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자그마치 5년 동안 일곱 차례에 걸쳐 “제발 마트 좀 열게 해 달라”고 서류를 들이밀었어요. 그런데 포항시는 그때마다 번번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일곱 번을 전부 다 막아낸 겁니다. 한번 상상해 보세요. 문을 열게 해 달라고 일곱 번을 찾아가서 일곱 번을 다 거절당하는 심정을요. 웬만한 집념이 아니고서는 정말 버티기 힘든 상황이죠.

image

하지만 롯데가 이렇게까지 매달린 건 그만큼 그 자리가 탐났기 때문이기도 하고, 동시에 이미 너무 많은 걸 쏟아부어서 여기서 발을 뺄 수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게 나중에 아주 중요한 대목이 되니까 잘 기억해 두세요. 포항시가 일곱 번을 거절한 근거는 앞서 말씀드린 그 유통산업발전법입니다. 죽도 시장 등 전통 시장 상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이었죠. 대규모 전포 등록 신청이 들어올 때마다 포항시는 지역 상인들의 의견을 듣고 관련 위원회의 심사를 거쳤는데, 결론은 늘 똑같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2017년 일곱 번째 신청 때는 협의회에서 표결까지 갔는데, 그마저도 결국 사실상 불허로 결론이 났어요.

이쯤 되면 롯데도 슬슬 벼랑 끝에 몰린 겁니다. 그래서 롯데쇼핑은 마지막 카드를 꺼냅니다. 법에 정식으로 호소하기로 한 거죠. 행정심판을 청구하고, 나아가 행정소송까지 제기했습니다. 쉽게 말해, 포항시가 우리 마트를 부당하게 막고 있으니 이게 정당한지 법원이 판단해 달라고 공식적으로 따지고든 거예요. 대기업이 지자체를 상대로 정면으로 법정 싸움을 건 겁니다. 자, 결과가 어떻게 됐을까요? 포항시가 이겼습니다. 그것도 아주 전부 다요. 행정심판에서도, 행정소송에서도 포항시가 모두 완벽하게 승소했어요. 법원은 포항시의 손을 들어줬고, 롯데쇼핑의 마트 입점은 이렇게 해서 완전히, 아주 확실하게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상인들이 처음 만세를 불렀던 그 승리가 법원 판결로 찍히기까지 박힌 완벽한 승리로 마무리된 거죠.

여기까지만 보면 이건 명백한 상인들의 위대한 승리 스토리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고, 법정에서까지 확인 도장을 받았으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세상일이 서류에 도장 찍는 걸로 다 끝나는 게 아니라는데 있었습니다. 자, 이제 그 건물을 봅시다. 1,475억 원을 들여 다 지어 놓은 그 초대형 건물 말이에요. 마트가 못 들어오게 됐으니 이 건물은 대체 어떻게 됐을까요? 텅 비었습니다. 그냥 대충 텅 빈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문을 한 번도 열어보지 못한 채로 방치됐어요. 2014년 12월에 완공됐으니까 겉으로는 번쩍번쩍한 새 건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들어올 핵심 주인공인 롯데마트가 통째로 사라져 버린 거죠. 상가 건물은 안에 장사할 사람이 들어와야 살아나는 법인데, 가장 큰 세입자가 통째로 날아가 버렸으니 이 거대한 건물이 그대로 죽어 버린 겁니다.

더 기막힌 건 그 바로 옆이었습니다. 이 판매 시설 건물 바로 옆에는 같은 시행사가 함께 지은 고층 호텔이 있었다고 말씀드렸죠. 지금의 라한 호텔입니다. 그런데 이 호텔은 2015년부터 아무 문제 없이 정상적으로 문을 열고 영업을 시작했어요. 지금까지도 아주 잘 운영되고 있고요. 그러니까 같은 자리에 같은 시기에 지어진 두 건물인데, 한쪽 호텔은 손님을 받으며 멀쩡히 돌아가고 바로 옆에 붙은 마트 건물은 유령처럼 텅 빈 채로 서 있는 이 기괴한 풍경이 펼쳐진 겁니다. 진짜 상상이 되십니까? 관광객들이 바다 보러 왔다가 이 광경을 보고 다들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저 큰 건물은 왜 저렇게 허무하게 비어 있냐”면서요.

시간이 갈수록 이 건물은 완벽한 흉물이 되어 갔습니다. 처음엔 새것 같던 외벽도 세월과 함께 낡아가고, 관리가 제대로 안 되니 여기저기 방치된 티가 팍팍 나기 시작했어요. 포항에서 가장 아름다워야 할 바닷가 관광지 한복판에 거대한 콘크리트 흉물이 떡하니 자리 잡은 겁니다. 영일대 해수욕장의 경관을 통째로 해치는 골칫거리 애물단지가 돼 버린 거죠. 관광 도시를 표방하는 포항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민망하고 부끄러운 일이 없었습니다. 2020년쯤 되니까 지역 언론에서도 참다못해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어요. 당시 기사 제목들을 보면 대략 이렇습니다. “멀쩡한 새 건물을 왜 5년 동안이나 방치해 놓느냐”는 거였죠. 완공된 지 5년이 넘도록 흉물로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한 지역 신문 기자가 직접 취재를 나가서 상황을 들여다봤는데, 알아낸 사실들이 하나같이 더 황당했습니다. 첫 번째로 황당한 건 롯데쇼핑의 처지였습니다. 롯데는 마트 문도 못 열었습니다. 그런데 이 건물을 빌리기로 계약을 해 놨으니, 장사는 한 푼도 못 하면서 임대료는 꼬박꼬박 계속 나가고 있었던 겁니다. 그 액수가 5년 넘는 기간 동안 무려 수십억 원에 달했다고 알려졌어요. 생각해 보세요. 장사는 시작도 못 했는데 빈 건물 임대료로 수십억을 날린 겁니다. 대기업이라고 돈이 하늘에서 그냥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이거야말로 앉아서 생돈을 활활 태운 셈이죠. 그래서 이 사건에서 가장 억울한 쪽은 오히려 롯데였다는 말까지 조심스럽게 나왔습니다.

두 번째로 황당한 건 건물 주인이었습니다. 이 건물 처음엔 STS 개발이 주인이었죠. 그런데 사업이 이 지경이 되니까 주인이 계속해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STS 개발에서 국민은행으로, 다시 코람코 펀드라는 곳으로, 이렇게 소유주가 몇 번이나 바뀌었어요. 나중엔 어떻게 됐는지 아십니까? 포항시조차도 이 건물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명의가 지금 누구 앞으로 돼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도시 한복판에 이렇게 거대한 건물이 서 있는데, 그 주인이 누군지 시청도 모른다니 이게 정말 말이 됩니까? 그야말로 주인 없는 유령 건물이 돼 버린 겁니다.

image

포항시의 오락가락 행정, 그리고 엇갈린 진실

자, 그러면 이 답답한 상황을 풀어야 할 포항시는 과연 뭘 하고 있었을까요? 여기서 사람들이 진짜 속이 터지는 대목이 나옵니다. 포항시의 태도가 참 애매하고, 뭐랄까, 갈팡질팡 오락가락했거든요. 포항시 입장은 이랬습니다. “이 건물은 전통 시장 상인들의 생존권에 영향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만 활용돼야 한다”고 선을 그었죠. 그래서 뭘 넣을 수 있느냐고 물으니 컨벤션 센터나 영화관, 음식점 같은 건 괜찮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마트나 옷을 파는 아울렛 같은 건 절대 안 된다는 거죠. 왜냐하면 그런 게 들어오면 또 전통 시장 상인들이랑 격렬하게 부딪히니까요.

그러니까 이 거대한 건물에 넣을 수 있는 업종이 아주 제한적으로 쪼그라든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번 냉정하게 생각해 보세요. 매장 면적이 17,000제곱미터가 넘는 초대형 판매 시설 건물이에요. 애초에 대형 마트를 넣으려고 그 거대한 규모로 설계하고 지은 건물입니다. 그런 건물에 마트도 안 되고 아울렛도 안 된다면 도대체 뭘 채워 넣으라는 말입니까? 영화관 하나, 음식점 몇 개로 그 어마어마한 공간을 다 채울 수 있을까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얘기였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이 건물에 들어오겠다는 곳이 나타날 리가 없었죠.

게다가 포항시는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우리가 건물주도 아닌데 우리가 나서서 뭘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라고 말이죠. 시 관계자는 시가 나서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취지에 책임 회피성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처음에 마트를 막을 때는 시가 적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해서 일곱 번이나 거절하고 소송까지 멋지게 이겼는데, 정작 그 결과로 도심에 거대한 흉물이 생기니까 이건 우리 소관이 아니라며 슬금슬금 발을 빼는 모양새가 돼 버린 거예요. 시민들 입장에서 이게 얼마나 답답하고 화가 났겠습니까?

상인들이 싸울 적을 잘못 골랐다?

여기서 잠깐, 처음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우리가 지금까지 본 게 정확히 뭐죠? 상인들은 마트를 확실하게 막았습니다. 그 결과로 롯데는 장사도 못 하고 수십억을 허공에 날렸어요. 시행사는 1,475억짜리 건물을 유령 건물로 고스란히 떠안았고요. 포항이라는 도시는 아름다운 관광지 한복판에 거대한 흉물을 얻었습니다. 시민들은 그렇게 원하던 편리한 마트를 결국 잃었고요.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상인들만큼은 큰 이득을 받겠지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몸을 던져 막았으니, 최소한 상인들이 그토록 지키려던 전통 시장만큼은 활기차게 살아났어야 정상 아니겠습니까? 마트라는 거대한 위협을 제거했으니 이제 손님들이 다시 전통 시장으로 구름처럼 몰려들고, 상인들은 활짝 웃으며 행복하게 장사를 이어갔어야죠.

과연 마트를 막아낸 그 전통 시장은 정말로 멋지게 살아남았을까요? 결론부터 확실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전통 시장은 전혀 살아나지 않았습니다. 마트를 그렇게 필사적으로 막아냈는데도 상인들이 그토록 지키고 싶어 했던 전통 시장과 구도심 상권은 되살아나기는커녕, 오히려 시들시들 심각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어요. 마트라는 눈앞의 위협을 완벽하게 제거했으면 당연히 손님이 시장으로 돌아왔어야 하는데, 현실은 정말 정반대로 흘러간 겁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마트도 없앴는데 왜 시장까지 같이 죽어갔을까요?

여기에 이 이야기에 가장 뼈 아픈 진실이 숨어 있습니다. 상인들은 처음부터 싸울 적을 완전히 잘못 골랐던 겁니다. 무슨 말이냐면요. 상인들은 자기들 밥줄을 위협하는 진짜 적이 대형마트라고 아주 굳게 믿었어요. 마트만 막으면 그 거대한 골리앗만 쓰러뜨리면 자기들이 무조건 살 거라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그들이 마트와 싸우느라 정신이 완전히 팔려 있는 동안, 등 뒤에서는 훨씬 더 무섭고 거대한 진짜 적이 조용히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바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변화였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온라인 쇼핑이었습니다. 한번 여러분 자신을 가만히 돌아보세요. 요즘 물건 주로 어디서 사십니까? 새벽에 주문하면 아침에 문 앞에 도착해 있고, 클릭 몇 번이면 다음 날 바로 도착하고, 무거운 쌀이며 생수며 다 집안까지 배달해 주는 세상입니다. 스마트폰 하나로 장을 다 보는 편리한 시대가 온 거예요. 이게 2010년대 중반부터 정말 무섭게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상황이 어떻게 됐겠습니까? 사람들이 전통 시장에도 잘 안 가고, 심지어 대형 마트에도 예전만큼 자주 안 가게 된 겁니다. 소비의 흐름 자체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통째로 이동해 버린 거죠.

이건 그냥 제 개인적인 추측이 절대 아닙니다. 실제로 여러 권위 있는 연구 결과가 이걸 정확히 뒷받침해요. 우리나라에서는 전통 시장을 살리겠다며 대형마트의 의무 휴업이라는 강력한 규제를 도입했습니다. 한 달에 두 번씩 대형 마트를 강제로 쉬게 만든 거예요. 마트가 문을 닫으면 그날 발길을 돌린 손님들이 전통 시장으로 갈 것이라는 아주 단순한 논리였죠. 그런데 국책 연구 기관인 KDI를 비롯한 여러 연구 기관이 실제 데이터를 자세히 들여다봤더니, 마트가 쉬는 날에 그 손님들이 전통 시장으로 고스란히 옮겨가더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마트가 문을 닫으면 그날 소비자들은 그냥 편하게 온라인으로 주문하거나, 아예 지갑을 닫아 버리는 경우가 훨씬 많았던 거예요.

무슨 뜻인지 이제 명확히 감이 오시죠? 마트를 막는다고 해서 그 손님이 전통 시장으로 유입되는 게 전혀 아니었던 겁니다. 애초에 세웠던 전제 자체가 완전히 틀렸던 거예요. 손님들은 마트냐 시장이냐를 두고 고민한 게 아니라, 오프라인이냐 온라인이냐를 두고 이미 마음을 굳히고 있었던 거니까요. 그러니 포항 상인들이 마트를 일곱 번이나 막아내고 힘겨운 법정 싸움까지 이겼다 한들, 그건 정작 자기들을 진짜 위협하는 적한테는 손끝 하나 되지 못한 허무한 승리였던 셈입니다.

여기에 포항이라는 도시가 처한 특수한 사정도 크게 겹쳤어요. 포항은 대표적인 철강 도시죠. 그런데 그 핵심 철강 산업이 예전만큼 호황을 누리지 못하고 예전 같지 않아졌습니다. 지역 경기가 전반적으로 어려워지고, 젊은 사람들은 좋은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로 떠나고, 인구는 계속해서 줄어들고 말았죠. 도시 전체의 활력이 뚝 떨어지니 구도심 상권은 더 빠르게 힘을 잃고 가라앉았습니다. 온라인 쇼핑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지역 경기 침체라는 악재까지 겹치니 전통 시장이 도저히 버텨낼 재간이 없었던 거예요.

image

스스로 무너진 대형마트, 그리고 씁쓸한 교훈

그런데 여기서 정말 기가 막힌 대반전이 하나 더 기다리고 있습니다. 상인들이 그토록 무서워하며 온 힘을 다해 막았던 그 대형마트가 몇 년 뒤에는 도대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포항에서 대형마트들이 오히려 스스로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고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홈플러스를 비롯한 대형마트들이 심각한 경영난을 못 이기고 줄줄이 폐점하는 충격적인 상황이 실제로 벌어진 거예요. 온라인에 밀려 쓰러진 건 비단 전통 시장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거대한 대기업 대형마트들조차 거센 온라인 쇼핑의 물결 앞에서는 버티지 못하고 하나둘 쓸쓸히 무너져 내린 거죠.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아주 깊게 곱씹어 보세요. 상인들은 그 골리앗을 쓰러뜨리려고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온 동네가 머리띠를 두르고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골리앗은 굳이 힘 빼고 싸우지 않아도 몇 년만 지나면 제발로 무너져 떠날 슬픈 운명이었던 거예요. 애초에 막을 필요조차 없었던 상대와 모든 걸 걸고 목숨 걸고 싸운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헛되이 힘을 쏟는 사이, 진짜 적한테는 아무런 방비도 못 하고 무방비로 당하고 만 거고요. 이보다 더 허무하고 슬픈 결말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자, 그럼 그 문제의 유령 건물은 지금 어떻게 됐을까요? 10년 넘게 흉물로 방치되던 그 거대한 건물 말입니다. 결국 기나긴 시간 끝에 새로운 활용 방안이 나오긴 했습니다. 2022년 DS 네트웍스라는 회사의 계열사가 이 건물을 아예 깨끗하게 철거해 버리기로 과감한 결정을 내린 거예요. 그리고 그 자리에 무려 49층짜리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를 멋지게 짓겠다는 대규모 계획을 내놓았습니다. 아파트 711가구에 오피스텔 40실까지 들어서는 정말 엄청난 대규모 개발 계획이었죠. 2023년 말에는 포항시가 이 주상복합 신축 계획을 정식으로 승인하기까지 완료했습니다. 오랫동안 꽁꽁 멈춰 있던 노른자 땅이 드디어 다시 활기차게 움직이나 싶었어요. 멀쩡한 1,475억짜리 새 건물을 단 하루도 제대로 써 보지 못한 채로, 이번엔 허무하게 부서 버리기로 한 겁니다. 짓는 데는 무려 1,475억 원이 들었는데, 그리고 이제 그걸 다시 부수는데 또 엄청난 돈이 들어갑니다. 이게 바로 우리가 너무나도 비싼 대가입니다.

그런데 이 화려한 주상복합 계획마저도 앞으로의 앞날이 그리 밝지만은 않아요. 왜냐면 포항은 지금 아파트가 엄청나게 남아도는 대표적인 도시거든요. 인구 50만 규모의 도시에 최근 몇 년간 새 아파트가 그야말로 물밀듯 쏟아졌습니다. 어느 해에는 무려 만 가구가 넘게 한꺼번에 공급되기도 했는데, 전문가들은 이게 적정 물량의 두 배를 훌쩍 넘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분석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분양이 산더미처럼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안 팔리고 남은 아파트가 3천 가구가 넘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어요. 과감하게 할인 분양을 해도 도무지 안 팔리고, 일부는 전세나 월세로 겨우 돌려서 억지로 소화하는 형편입니다. 이런 무거운 상황에서 그 자리에 또 최고층 아파트 700여 가구를 새로 지어 넣는다면, 이게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그 누구도 쉽게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인 거죠.

자, 이제 처음 던졌던 그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이겼다고 다들 기뻐하며 만세를 불렀는데, 왜 10년 뒤에 다 같이 망하고 말았을까요? 한번 찬찬히 냉정하게 따져 봅시다. 이 치열한 싸움에서 도대체 최종적으로 누가 이겼습니까? 시민들은 그토록 원했던 편리한 마트를 끝내 단 한 번도 갖지 못했습니다. 지역에 좋은 일자리 수백 개도 마트와 함께 허공으로 날아갔죠. 롯데는 장사 한번 시작도 못 해보고 빈 건물 임대료로만 생돈 수십억을 태웠습니다. 시행사는 1,475억을 들여 애써 지은 건물을 유령 건물로 떠안았다가 결국 허무하게 부수게 됐고요. 포항이라는 도시는 가장 아름다워야 할 바닷가 한복판에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거대한 흉물을 안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정작 이 모든 싸움의 주인공이자 그토록 크게 만세를 불렀던 우리 전통 시장 상인들은 대체 어떻게 됐나요? 마트를 멋지게 막아냈지만 시장은 끝내 쇠락했고, 진짜 무서운 적이었던 온라인 쇼핑 앞에서는 손 한번 제대로 못 써보고 당했습니다. 승자가 전혀 없습니다. 정말 단 한 명도요. 모두가 조금씩 혹은 아주 크게 읽기만한 상처뿐인 싸움이었습니다. 이게 바로 ‘이겼는데 다 같이 망했다’는 서글픈 말의 진짜 의미입니다. 서류상으로는 분명히 누군가 승리 도장을 찍은 싸움인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모두가 울고 있고 웃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그런 씁쓸한 결말이었던 거죠.

물론 저는 시장 상인들을 마냥 어리석다고 비웃거나 비난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분들이 느끼셨을 그 절박함만큼은 진짜 진짜였으니까요. 내 가족의 생계와 밥줄이 통째로 걸렸다고 믿으면, 그 누구라도 머리띠를 두르고 결사반대를 외치며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인간으로서 당연한 인지상정이에요. 진짜 문제는 싸우는 방향이었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막는 데만 온 힘을 쏟아부을 때, 정작 세상이 어디로 거대하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완전히 놓쳐 버리면, 그 힘겹게 얻은 승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죠.

이 포항 두호동의 쓸쓸한 유령 건물이 우리에게 조용하지만 강력하게 들려주는 교훈이 바로 그겁니다. 지키고 싶은 소중한 게 있을 때, 우리가 진짜 목숨 걸고 싸워야 할 상대는 눈앞의 경쟁자가 아니라 거대한 시대의 흐름일지도 모릅니다. 마트를 억지로 막는다고 시장이 저절로 사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거대한 변화의 파도에 함께 올라탈 것인가를 밤새 고민했어야 하는 거죠. 온라인이 무섭게 밀려올 때, 전통 시장도 발빠르게 배달 서비스를 도입하고 온라인 주문을 적극적으로 받고, 젊은 손님들을 끌어들일 만한 방법을 찾았어야 했는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그렇게 시대에 발맞춰 변화에 잘 적응해서 멋지게 살아남은 명물 시장들도 분명히 도처에 존재하니까요. 결국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건 경쟁자를 힘으로 밀어낸 사람이 아니라, 변화에 유연하게 올라탄 사람인 법입니다.

지금도 포항 영일대 해수욕장 앞에 가면 그 거대했던 유령 건물의 흔적을 아련하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단 하루도 스스로 불을 켜보지 못했던 슬픈 건물 말이죠. 짓는 데는 무려 1,475억 원이라는 거금이 들었지만, 그 누구도 단 한 번도 써 보지 못한 비운의 건물입니다. 누군가에게는 한때 짜릿한 승리의 찬란한 상징이었겠지만, 결국에는 우리 모두의 패배를 아프게 증언하는 거대한 기념비가 되어 버린 건물이죠. 그 텅 빈 건물이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묵직한 질문은 어쩌면 이겁니다. “당신이 그토록 소중하게 지키려는 그것, 정말 지금 그 방법이 맞습니까?”

여기까지 포항 두호동 유령 건물에 얽힌 아주 씁쓸하고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흥미로운 이야기였습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어쩌면 이와 비슷한 안타까운 일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똑같이 벌어지고 있을지 모릅니다. 눈앞에 작은 상대와 죽기 살기로 싸우느라, 정작 뒤에서 밀려오는 진짜 중요한 흐름을 놓치는 일 말이죠. 오늘 들려 드린 이야기가 세상을 조금은 더 넓고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긴 이야기 끝까지 몰입해서 함께 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음번에도 더 흥미진하고 깊이 있는 통찰이 가득한 이야기로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마트 절대 안 돼!” 외쳤던 포항, 10년 후 모두가 망했다?

바닷가 가장 좋은 자리에 1,475억 원을 들여 지하 3층, 지상 6층의 초대형 건물이 웅장하게 서 있습니다. 매장 면적만 17,000제곱미터가 넘는, 웬만한 대형마트 서너 개를 합친 것보다 훨씬 거대한 건물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이 어마어마한 건물이 완공된 지 10년이 넘도록 단 하루도 문을 열지 못했습니다. 손님이 들어간 적도, 계산대에 불이 켜진 적도, 영업 시작 안내 방송조차 나온 적이 없다고 합니다. 완공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마치 유령처럼 텅 빈 채로 서 있기만 한 것이죠.

새 건물이 이렇게 흉물로 변해가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의아해합니다. “저 멀쩡한 건물을 왜 저렇게 놀리는 걸까?” 관광객이 몰리는 해수욕장 바로 앞에, 1,500억 원에 가까운 돈이 들어간 건물이 10년 넘게 텅 비어 있다는 사실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머리띠를 질끈 동여맨 사람들이 결사반대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왔던 그날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결국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고 “우리가 이겼다!”며 만세를 불렀던 그날 말이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날 그들이 외쳤던 만세는 결국 자기 발등을 찍는 도끼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기긴 이겼는데, 10년 뒤에는 아무도 웃지 못하는 결말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image

포항, 철강 도시에서 관광지로

이야기의 무대는 경상북도 포항입니다. 포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 포스코, 즉 포항제철일 것입니다. 우리나라 산업화의 상징이자 한때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었던 도시죠. 철강 하나로 도시 전체가 먹고 살았고, 덕분에 인구 50만 명이 넘는 중견 도시로 자리 잡았습니다. 돈이 활발하게 돌고 사람이 구름처럼 몰리는 도시였습니다.

그런 포항 북구에 두호동이라는 동네가 있습니다. 바로 이곳이 오늘 이야기의 핵심 무대입니다. 두호동은 영일대 해수욕장을 끼고 있습니다. 포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대표 해변이고, 여름이면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비는 곳이죠. 밤이 되면 바다 위로 화려한 조명이 켜지고, 해변을 따라 카페와 횟집이 늘어서 있는, 말하자면 포항에서 가장 번화한 상권 중 하나입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이곳을 ‘최고의 노른자 땅’이라고 표현합니다.

1,475억 원의 야심찬 계획, 그리고 롯데마트

이 노른자 땅에 2010년대 초반, 한 시행사가 야심 찬 계획을 세웁니다. 바로 STS 개발이라는 회사였는데요. 이 회사는 영일대 해수욕장 바로 앞에 대형 복합 건물을 짓기로 한 것입니다. 계획은 이랬습니다. 한쪽에는 관광객이 묵을 수 있는 고층 호텔을 짓고, 그 옆에 붙여서 커다란 판매 시설, 즉 쇼핑을 할 수 있는 대형 상가 건물을 세우는 것이었죠. 바닷가 명당에 호텔과 쇼핑몰이 나란히 붙어 있는 그림은 상상만 해도 사람이 엄청나게 몰릴 것 같지 않습니까? 여기에 투입된 돈이 무려 1,475억 원입니다. 요즘 물가로도 엄청난 돈이지만, 10여 년 전이라면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의 투자였죠.

그리고 이 판매 시설 건물에 들어오기로 한 곳이 바로 우리가 모두 아는 롯데마트였습니다. 정확히는 롯데쇼핑이 STS 개발로부터 이 건물을 통째로 빌려 ‘롯데마트 두호점’이라는 간판을 걸고 문을 열 계획이었어요. 대기업 대형마트가 바닷가 명당에 들어온다니, 게다가 옆에는 번듯한 호텔까지 있다니 얼핏 보기에는 좋은 일 같지 않습니까? 일자리도 새로 생기고 동네도 활기를 띠고 관광객도 더 몰릴 테니까요.

주민들의 환영과 상인들의 절규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두호동 인근에 사는 주민들과 상당수 포항 시민들은 롯데마트가 들어온다는 소식을 오히려 반겼습니다. 이유는 아주 현실적이고 단순했습니다. 첫째는 바로 일자리였습니다. 대형마트 하나가 들어오면 계산원부터 매장 직원, 주차 관리, 청소, 배송까지 수백 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기니 지역 청년들이나 주부들에게는 정말 반가운 소식이었죠. 둘째는 편의성이었습니다. 큰 마트가 하나 생기면 장보기가 얼마나 편해집니까? 신선식품부터 생활용품, 옷, 전자제품까지 한 자리에서 다 살 수 있고, 주차장도 넓고 카트 끌고 편하게 쇼핑하고 무거운 짐은 배달까지 해주니까요. 셋째는 선택의 폭이었습니다. 물건 종류가 다양해지고 가격 경쟁이 붙으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무조건 이득이거든요. 한마디로 평범한 시민들 입장에서는 대형마트는 삶의 질이 확 올라가는 일이었습니다.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집 근처에 크고 깨끗한 마트가 하나 생긴다는데 그걸 마다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주말에 가족들 데리고 나가서 장도 보고 밥도 먹고 구경도 하는, 요즘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누리는 그 일상 말이죠. 두호동 주민들도 딱 그런 행복한 그림을 기대했던 겁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에는 반대편이 있는 법이죠. 이 소식을 듣고 얼굴이 하얗게 질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전통시장 상인들이었습니다. 포항에는 죽도 시장이라는 아주 유명한 전통 시장이 있습니다. 그냥 평범한 동네 시장 수준이 아닙니다. 영남권을 대표하는 초대형 재래시장이고, 특히 싱싱한 해산물로 전국의 이름이 널리 나 있는 곳이죠. 포항에 오면 죽도 시장 가서 회 한 접시 꼭 먹고 가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수천 개의 점포가 다닥다닥 붙어서 수많은 상인들이 대를 이어가며 장사를 해온 터전입니다. 이 죽도 시장을 비롯해 포항 곳곳의 전통 시장 상인들에게 대형마트의 등장은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상인들의 논리는 이랬습니다. “대형마트가 들어오면 손님을 다 빼앗길 거고, 그러면 우리는 다 굶어 죽는다.” 생각해 보면 정말 그럴듯한 걱정이었습니다. 냉난방 빵빵하게 나오고 주차장 넓고 카드 결제 편하고 깔끔하게 포장된 물건이 진열된 대형마트가 들어서는데, 반면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주차하기도 불편한 전통 시장은 밀릴 수밖에 없잖아요. 소비자들이 어디로 몰리겠습니까? 당연히 마트 아니겠느냐는 거였죠. 그러니 상인들 입장에서는 이건 단순한 경쟁이 아니라 목숨이 걸린 생존권 문제였던 겁니다. 그래서 상인들은 똘똘 뭉쳤습니다.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지역 상권 죽이는 대형마트 입점 결사반대! 우리도 먹고 살자!” 이런 구호를 외치면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습니다. 시청 앞에 모여서 목소리를 높이고 반대 서명을 받고 현수막을 크게 내걸었죠.

image

법의 심판대 위에 오른 롯데마트

자, 여기서 상황을 한번 정리해 볼까요? 한쪽에는 마트 들어오면 편하고 좋다며 찬성하는 주민과 시민들이 있습니다. 다른 한쪽에는 마트 들어오면 우리 다 죽는다며 결사 반대하는 전통 시장 상인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둘 사이에서 엄청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포항시, 즉 행정을 책임지는 시청이었죠.

여기서 우리가 하나 꼭 알아둬야 할 게 있습니다. 대형마트라는 게 그냥 돈만 있다고 아무 데나 뚝딱 지어서 문을 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유통산업발전법’이라는 법이 있습니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쉽게 말하면 이런 겁니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나 큰 슈퍼마켓이 아무 데나 막 들어오면 동네 작은 가게들이나 전통 시장이 다 죽어버릴 수 있으니, 국가가 나서서 좀 조절하겠다는 법이죠. 그래서 대형마트가 새로 문을 열려면 그 지역 지자체, 그러니까 시청이나 구청에 ‘대규모 전포 개설 등록’이라는 걸 신청해서 정식으로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냥 신고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지역 상인들 의견도 듣고 위원회의 심사도 거치고, 이런 복잡한 절차를 통과해야 하는 거죠.

바로 이 법이 오늘 이야기의 결정적인 열쇠가 됩니다. 롯데마트가 문을 열려면 포항시의 허가가 반드시 필요했고, 포항시는 이 법을 근거로 허가를 내줄지 말지를 결정할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주민들은 찬성하고 상인들은 반대하고, 그 사이에서 시청이 저울질을 하는 상황이라 정말 팽팽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포항시는 최종 결정을 내립니다. 전통 시장 상인들의 손을 들어준 거예요. 죽도 시장을 비롯한 전통 시장 상인들의 생존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포항시가 내세운 명분이었습니다. 즉, 롯데마트 두호점의 입점을 허가해 줄 수 없다는 것이었죠.

이 소식이 전해지자 전통 시장 상인들은 환호했습니다. 머리띠를 벗어던지고 서로를 얼싸안았습니다. “우리가 이겼다! 대기업을 상대로 우리가 당당히 이겨냈다!”며 정말 기뻐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 같은 통쾌함이었을 겁니다. 거대한 대기업, 그 롯데를 상대로 평범한 시장 상인들이 뭉쳐서 승리를 거뒀으니까요. 그날만큼은 정말이지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을 겁니다. 만세를 불렀습니다. 승리의 만세를요.

텅 빈 건물, 그리고 씁쓸한 현실

그런데 말입니다. 바로 여기서부터가 진짜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상인들은 자신들이 원하던 걸 정확히 손에 넣었습니다. 마트를 완벽하게 막아냈으니 원하는 건 다 이뤘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 완벽해 보였던 승리가 10년 뒤 아무도 웃지 못하는 재앙의 씨앗이 되고 말았을까요? 승리에 취한 상인들이 만세를 부르는 동안, 반대편에서는 전혀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롯데쇼핑이었죠. 대기업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세요. 바닷가 노른자 땅에 마트를 열려고 계약까지 다 해 놨는데 시청이 허가를 안 내 준다니, 이건 그냥 순순히 물러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엄청난 돈이 투입된 사업이었고, 걸린 돈이 한두 푼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 롯데쇼핑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신청했어요. 그런데 또 반려당하자, 그럼 또 신청했고, 그런데 또 거부당했습니다. 여러분, 롯데쇼핑이 이 두호점 하나 열겠다고 몇 번이나 신청했는지 아십니까? 무려 일곱 번입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자그마치 5년 동안 일곱 차례에 걸쳐 “제발 마트 좀 열게 해 달라”고 서류를 들이밀었어요. 그런데 포항시는 그때마다 번번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일곱 번을 전부 다 막아낸 겁니다. 한번 상상해 보세요. 문을 열게 해 달라고 일곱 번을 찾아가서 일곱 번을 다 거절당하는 심정을요. 웬만한 집념이 아니고서는 정말 버티기 힘든 상황이죠.

image

하지만 롯데가 이렇게까지 매달린 건 그만큼 그 자리가 탐났기 때문이기도 하고, 동시에 이미 너무 많은 걸 쏟아부어서 여기서 발을 뺄 수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게 나중에 아주 중요한 대목이 되니까 잘 기억해 두세요. 포항시가 일곱 번을 거절한 근거는 앞서 말씀드린 그 유통산업발전법입니다. 죽도 시장 등 전통 시장 상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이었죠. 대규모 전포 등록 신청이 들어올 때마다 포항시는 지역 상인들의 의견을 듣고 관련 위원회의 심사를 거쳤는데, 결론은 늘 똑같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2017년 일곱 번째 신청 때는 협의회에서 표결까지 갔는데, 그마저도 결국 사실상 불허로 결론이 났어요.

이쯤 되면 롯데도 슬슬 벼랑 끝에 몰린 겁니다. 그래서 롯데쇼핑은 마지막 카드를 꺼냅니다. 법에 정식으로 호소하기로 한 거죠. 행정심판을 청구하고, 나아가 행정소송까지 제기했습니다. 쉽게 말해, 포항시가 우리 마트를 부당하게 막고 있으니 이게 정당한지 법원이 판단해 달라고 공식적으로 따지고든 거예요. 대기업이 지자체를 상대로 정면으로 법정 싸움을 건 겁니다. 자, 결과가 어떻게 됐을까요? 포항시가 이겼습니다. 그것도 아주 전부 다요. 행정심판에서도, 행정소송에서도 포항시가 모두 완벽하게 승소했어요. 법원은 포항시의 손을 들어줬고, 롯데쇼핑의 마트 입점은 이렇게 해서 완전히, 아주 확실하게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상인들이 처음 만세를 불렀던 그 승리가 법원 판결로 찍히기까지 박힌 완벽한 승리로 마무리된 거죠.

여기까지만 보면 이건 명백한 상인들의 위대한 승리 스토리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고, 법정에서까지 확인 도장을 받았으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세상일이 서류에 도장 찍는 걸로 다 끝나는 게 아니라는데 있었습니다. 자, 이제 그 건물을 봅시다. 1,475억 원을 들여 다 지어 놓은 그 초대형 건물 말이에요. 마트가 못 들어오게 됐으니 이 건물은 대체 어떻게 됐을까요? 텅 비었습니다. 그냥 대충 텅 빈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문을 한 번도 열어보지 못한 채로 방치됐어요. 2014년 12월에 완공됐으니까 겉으로는 번쩍번쩍한 새 건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들어올 핵심 주인공인 롯데마트가 통째로 사라져 버린 거죠. 상가 건물은 안에 장사할 사람이 들어와야 살아나는 법인데, 가장 큰 세입자가 통째로 날아가 버렸으니 이 거대한 건물이 그대로 죽어 버린 겁니다.

더 기막힌 건 그 바로 옆이었습니다. 이 판매 시설 건물 바로 옆에는 같은 시행사가 함께 지은 고층 호텔이 있었다고 말씀드렸죠. 지금의 라한 호텔입니다. 그런데 이 호텔은 2015년부터 아무 문제 없이 정상적으로 문을 열고 영업을 시작했어요. 지금까지도 아주 잘 운영되고 있고요. 그러니까 같은 자리에 같은 시기에 지어진 두 건물인데, 한쪽 호텔은 손님을 받으며 멀쩡히 돌아가고 바로 옆에 붙은 마트 건물은 유령처럼 텅 빈 채로 서 있는 이 기괴한 풍경이 펼쳐진 겁니다. 진짜 상상이 되십니까? 관광객들이 바다 보러 왔다가 이 광경을 보고 다들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저 큰 건물은 왜 저렇게 허무하게 비어 있냐”면서요.

시간이 갈수록 이 건물은 완벽한 흉물이 되어 갔습니다. 처음엔 새것 같던 외벽도 세월과 함께 낡아가고, 관리가 제대로 안 되니 여기저기 방치된 티가 팍팍 나기 시작했어요. 포항에서 가장 아름다워야 할 바닷가 관광지 한복판에 거대한 콘크리트 흉물이 떡하니 자리 잡은 겁니다. 영일대 해수욕장의 경관을 통째로 해치는 골칫거리 애물단지가 돼 버린 거죠. 관광 도시를 표방하는 포항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민망하고 부끄러운 일이 없었습니다. 2020년쯤 되니까 지역 언론에서도 참다못해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어요. 당시 기사 제목들을 보면 대략 이렇습니다. “멀쩡한 새 건물을 왜 5년 동안이나 방치해 놓느냐”는 거였죠. 완공된 지 5년이 넘도록 흉물로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한 지역 신문 기자가 직접 취재를 나가서 상황을 들여다봤는데, 알아낸 사실들이 하나같이 더 황당했습니다. 첫 번째로 황당한 건 롯데쇼핑의 처지였습니다. 롯데는 마트 문도 못 열었습니다. 그런데 이 건물을 빌리기로 계약을 해 놨으니, 장사는 한 푼도 못 하면서 임대료는 꼬박꼬박 계속 나가고 있었던 겁니다. 그 액수가 5년 넘는 기간 동안 무려 수십억 원에 달했다고 알려졌어요. 생각해 보세요. 장사는 시작도 못 했는데 빈 건물 임대료로 수십억을 날린 겁니다. 대기업이라고 돈이 하늘에서 그냥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이거야말로 앉아서 생돈을 활활 태운 셈이죠. 그래서 이 사건에서 가장 억울한 쪽은 오히려 롯데였다는 말까지 조심스럽게 나왔습니다.

두 번째로 황당한 건 건물 주인이었습니다. 이 건물 처음엔 STS 개발이 주인이었죠. 그런데 사업이 이 지경이 되니까 주인이 계속해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STS 개발에서 국민은행으로, 다시 코람코 펀드라는 곳으로, 이렇게 소유주가 몇 번이나 바뀌었어요. 나중엔 어떻게 됐는지 아십니까? 포항시조차도 이 건물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명의가 지금 누구 앞으로 돼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도시 한복판에 이렇게 거대한 건물이 서 있는데, 그 주인이 누군지 시청도 모른다니 이게 정말 말이 됩니까? 그야말로 주인 없는 유령 건물이 돼 버린 겁니다.

image

포항시의 오락가락 행정, 그리고 엇갈린 진실

자, 그러면 이 답답한 상황을 풀어야 할 포항시는 과연 뭘 하고 있었을까요? 여기서 사람들이 진짜 속이 터지는 대목이 나옵니다. 포항시의 태도가 참 애매하고, 뭐랄까, 갈팡질팡 오락가락했거든요. 포항시 입장은 이랬습니다. “이 건물은 전통 시장 상인들의 생존권에 영향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만 활용돼야 한다”고 선을 그었죠. 그래서 뭘 넣을 수 있느냐고 물으니 컨벤션 센터나 영화관, 음식점 같은 건 괜찮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마트나 옷을 파는 아울렛 같은 건 절대 안 된다는 거죠. 왜냐하면 그런 게 들어오면 또 전통 시장 상인들이랑 격렬하게 부딪히니까요.

그러니까 이 거대한 건물에 넣을 수 있는 업종이 아주 제한적으로 쪼그라든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번 냉정하게 생각해 보세요. 매장 면적이 17,000제곱미터가 넘는 초대형 판매 시설 건물이에요. 애초에 대형 마트를 넣으려고 그 거대한 규모로 설계하고 지은 건물입니다. 그런 건물에 마트도 안 되고 아울렛도 안 된다면 도대체 뭘 채워 넣으라는 말입니까? 영화관 하나, 음식점 몇 개로 그 어마어마한 공간을 다 채울 수 있을까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얘기였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이 건물에 들어오겠다는 곳이 나타날 리가 없었죠.

게다가 포항시는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우리가 건물주도 아닌데 우리가 나서서 뭘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라고 말이죠. 시 관계자는 시가 나서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취지에 책임 회피성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처음에 마트를 막을 때는 시가 적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해서 일곱 번이나 거절하고 소송까지 멋지게 이겼는데, 정작 그 결과로 도심에 거대한 흉물이 생기니까 이건 우리 소관이 아니라며 슬금슬금 발을 빼는 모양새가 돼 버린 거예요. 시민들 입장에서 이게 얼마나 답답하고 화가 났겠습니까?

상인들이 싸울 적을 잘못 골랐다?

여기서 잠깐, 처음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우리가 지금까지 본 게 정확히 뭐죠? 상인들은 마트를 확실하게 막았습니다. 그 결과로 롯데는 장사도 못 하고 수십억을 허공에 날렸어요. 시행사는 1,475억짜리 건물을 유령 건물로 고스란히 떠안았고요. 포항이라는 도시는 아름다운 관광지 한복판에 거대한 흉물을 얻었습니다. 시민들은 그렇게 원하던 편리한 마트를 결국 잃었고요.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상인들만큼은 큰 이득을 받겠지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몸을 던져 막았으니, 최소한 상인들이 그토록 지키려던 전통 시장만큼은 활기차게 살아났어야 정상 아니겠습니까? 마트라는 거대한 위협을 제거했으니 이제 손님들이 다시 전통 시장으로 구름처럼 몰려들고, 상인들은 활짝 웃으며 행복하게 장사를 이어갔어야죠.

과연 마트를 막아낸 그 전통 시장은 정말로 멋지게 살아남았을까요? 결론부터 확실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전통 시장은 전혀 살아나지 않았습니다. 마트를 그렇게 필사적으로 막아냈는데도 상인들이 그토록 지키고 싶어 했던 전통 시장과 구도심 상권은 되살아나기는커녕, 오히려 시들시들 심각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어요. 마트라는 눈앞의 위협을 완벽하게 제거했으면 당연히 손님이 시장으로 돌아왔어야 하는데, 현실은 정말 정반대로 흘러간 겁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마트도 없앴는데 왜 시장까지 같이 죽어갔을까요?

여기에 이 이야기에 가장 뼈 아픈 진실이 숨어 있습니다. 상인들은 처음부터 싸울 적을 완전히 잘못 골랐던 겁니다. 무슨 말이냐면요. 상인들은 자기들 밥줄을 위협하는 진짜 적이 대형마트라고 아주 굳게 믿었어요. 마트만 막으면 그 거대한 골리앗만 쓰러뜨리면 자기들이 무조건 살 거라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그들이 마트와 싸우느라 정신이 완전히 팔려 있는 동안, 등 뒤에서는 훨씬 더 무섭고 거대한 진짜 적이 조용히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바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변화였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온라인 쇼핑이었습니다. 한번 여러분 자신을 가만히 돌아보세요. 요즘 물건 주로 어디서 사십니까? 새벽에 주문하면 아침에 문 앞에 도착해 있고, 클릭 몇 번이면 다음 날 바로 도착하고, 무거운 쌀이며 생수며 다 집안까지 배달해 주는 세상입니다. 스마트폰 하나로 장을 다 보는 편리한 시대가 온 거예요. 이게 2010년대 중반부터 정말 무섭게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상황이 어떻게 됐겠습니까? 사람들이 전통 시장에도 잘 안 가고, 심지어 대형 마트에도 예전만큼 자주 안 가게 된 겁니다. 소비의 흐름 자체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통째로 이동해 버린 거죠.

이건 그냥 제 개인적인 추측이 절대 아닙니다. 실제로 여러 권위 있는 연구 결과가 이걸 정확히 뒷받침해요. 우리나라에서는 전통 시장을 살리겠다며 대형마트의 의무 휴업이라는 강력한 규제를 도입했습니다. 한 달에 두 번씩 대형 마트를 강제로 쉬게 만든 거예요. 마트가 문을 닫으면 그날 발길을 돌린 손님들이 전통 시장으로 갈 것이라는 아주 단순한 논리였죠. 그런데 국책 연구 기관인 KDI를 비롯한 여러 연구 기관이 실제 데이터를 자세히 들여다봤더니, 마트가 쉬는 날에 그 손님들이 전통 시장으로 고스란히 옮겨가더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마트가 문을 닫으면 그날 소비자들은 그냥 편하게 온라인으로 주문하거나, 아예 지갑을 닫아 버리는 경우가 훨씬 많았던 거예요.

무슨 뜻인지 이제 명확히 감이 오시죠? 마트를 막는다고 해서 그 손님이 전통 시장으로 유입되는 게 전혀 아니었던 겁니다. 애초에 세웠던 전제 자체가 완전히 틀렸던 거예요. 손님들은 마트냐 시장이냐를 두고 고민한 게 아니라, 오프라인이냐 온라인이냐를 두고 이미 마음을 굳히고 있었던 거니까요. 그러니 포항 상인들이 마트를 일곱 번이나 막아내고 힘겨운 법정 싸움까지 이겼다 한들, 그건 정작 자기들을 진짜 위협하는 적한테는 손끝 하나 되지 못한 허무한 승리였던 셈입니다.

여기에 포항이라는 도시가 처한 특수한 사정도 크게 겹쳤어요. 포항은 대표적인 철강 도시죠. 그런데 그 핵심 철강 산업이 예전만큼 호황을 누리지 못하고 예전 같지 않아졌습니다. 지역 경기가 전반적으로 어려워지고, 젊은 사람들은 좋은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로 떠나고, 인구는 계속해서 줄어들고 말았죠. 도시 전체의 활력이 뚝 떨어지니 구도심 상권은 더 빠르게 힘을 잃고 가라앉았습니다. 온라인 쇼핑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지역 경기 침체라는 악재까지 겹치니 전통 시장이 도저히 버텨낼 재간이 없었던 거예요.

image

스스로 무너진 대형마트, 그리고 씁쓸한 교훈

그런데 여기서 정말 기가 막힌 대반전이 하나 더 기다리고 있습니다. 상인들이 그토록 무서워하며 온 힘을 다해 막았던 그 대형마트가 몇 년 뒤에는 도대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포항에서 대형마트들이 오히려 스스로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고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홈플러스를 비롯한 대형마트들이 심각한 경영난을 못 이기고 줄줄이 폐점하는 충격적인 상황이 실제로 벌어진 거예요. 온라인에 밀려 쓰러진 건 비단 전통 시장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거대한 대기업 대형마트들조차 거센 온라인 쇼핑의 물결 앞에서는 버티지 못하고 하나둘 쓸쓸히 무너져 내린 거죠.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아주 깊게 곱씹어 보세요. 상인들은 그 골리앗을 쓰러뜨리려고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온 동네가 머리띠를 두르고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골리앗은 굳이 힘 빼고 싸우지 않아도 몇 년만 지나면 제발로 무너져 떠날 슬픈 운명이었던 거예요. 애초에 막을 필요조차 없었던 상대와 모든 걸 걸고 목숨 걸고 싸운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헛되이 힘을 쏟는 사이, 진짜 적한테는 아무런 방비도 못 하고 무방비로 당하고 만 거고요. 이보다 더 허무하고 슬픈 결말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자, 그럼 그 문제의 유령 건물은 지금 어떻게 됐을까요? 10년 넘게 흉물로 방치되던 그 거대한 건물 말입니다. 결국 기나긴 시간 끝에 새로운 활용 방안이 나오긴 했습니다. 2022년 DS 네트웍스라는 회사의 계열사가 이 건물을 아예 깨끗하게 철거해 버리기로 과감한 결정을 내린 거예요. 그리고 그 자리에 무려 49층짜리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를 멋지게 짓겠다는 대규모 계획을 내놓았습니다. 아파트 711가구에 오피스텔 40실까지 들어서는 정말 엄청난 대규모 개발 계획이었죠. 2023년 말에는 포항시가 이 주상복합 신축 계획을 정식으로 승인하기까지 완료했습니다. 오랫동안 꽁꽁 멈춰 있던 노른자 땅이 드디어 다시 활기차게 움직이나 싶었어요. 멀쩡한 1,475억짜리 새 건물을 단 하루도 제대로 써 보지 못한 채로, 이번엔 허무하게 부서 버리기로 한 겁니다. 짓는 데는 무려 1,475억 원이 들었는데, 그리고 이제 그걸 다시 부수는데 또 엄청난 돈이 들어갑니다. 이게 바로 우리가 너무나도 비싼 대가입니다.

그런데 이 화려한 주상복합 계획마저도 앞으로의 앞날이 그리 밝지만은 않아요. 왜냐면 포항은 지금 아파트가 엄청나게 남아도는 대표적인 도시거든요. 인구 50만 규모의 도시에 최근 몇 년간 새 아파트가 그야말로 물밀듯 쏟아졌습니다. 어느 해에는 무려 만 가구가 넘게 한꺼번에 공급되기도 했는데, 전문가들은 이게 적정 물량의 두 배를 훌쩍 넘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분석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분양이 산더미처럼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안 팔리고 남은 아파트가 3천 가구가 넘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어요. 과감하게 할인 분양을 해도 도무지 안 팔리고, 일부는 전세나 월세로 겨우 돌려서 억지로 소화하는 형편입니다. 이런 무거운 상황에서 그 자리에 또 최고층 아파트 700여 가구를 새로 지어 넣는다면, 이게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그 누구도 쉽게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인 거죠.

자, 이제 처음 던졌던 그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이겼다고 다들 기뻐하며 만세를 불렀는데, 왜 10년 뒤에 다 같이 망하고 말았을까요? 한번 찬찬히 냉정하게 따져 봅시다. 이 치열한 싸움에서 도대체 최종적으로 누가 이겼습니까? 시민들은 그토록 원했던 편리한 마트를 끝내 단 한 번도 갖지 못했습니다. 지역에 좋은 일자리 수백 개도 마트와 함께 허공으로 날아갔죠. 롯데는 장사 한번 시작도 못 해보고 빈 건물 임대료로만 생돈 수십억을 태웠습니다. 시행사는 1,475억을 들여 애써 지은 건물을 유령 건물로 떠안았다가 결국 허무하게 부수게 됐고요. 포항이라는 도시는 가장 아름다워야 할 바닷가 한복판에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거대한 흉물을 안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정작 이 모든 싸움의 주인공이자 그토록 크게 만세를 불렀던 우리 전통 시장 상인들은 대체 어떻게 됐나요? 마트를 멋지게 막아냈지만 시장은 끝내 쇠락했고, 진짜 무서운 적이었던 온라인 쇼핑 앞에서는 손 한번 제대로 못 써보고 당했습니다. 승자가 전혀 없습니다. 정말 단 한 명도요. 모두가 조금씩 혹은 아주 크게 읽기만한 상처뿐인 싸움이었습니다. 이게 바로 ‘이겼는데 다 같이 망했다’는 서글픈 말의 진짜 의미입니다. 서류상으로는 분명히 누군가 승리 도장을 찍은 싸움인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모두가 울고 있고 웃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그런 씁쓸한 결말이었던 거죠.

물론 저는 시장 상인들을 마냥 어리석다고 비웃거나 비난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분들이 느끼셨을 그 절박함만큼은 진짜 진짜였으니까요. 내 가족의 생계와 밥줄이 통째로 걸렸다고 믿으면, 그 누구라도 머리띠를 두르고 결사반대를 외치며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인간으로서 당연한 인지상정이에요. 진짜 문제는 싸우는 방향이었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막는 데만 온 힘을 쏟아부을 때, 정작 세상이 어디로 거대하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완전히 놓쳐 버리면, 그 힘겹게 얻은 승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죠.

이 포항 두호동의 쓸쓸한 유령 건물이 우리에게 조용하지만 강력하게 들려주는 교훈이 바로 그겁니다. 지키고 싶은 소중한 게 있을 때, 우리가 진짜 목숨 걸고 싸워야 할 상대는 눈앞의 경쟁자가 아니라 거대한 시대의 흐름일지도 모릅니다. 마트를 억지로 막는다고 시장이 저절로 사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거대한 변화의 파도에 함께 올라탈 것인가를 밤새 고민했어야 하는 거죠. 온라인이 무섭게 밀려올 때, 전통 시장도 발빠르게 배달 서비스를 도입하고 온라인 주문을 적극적으로 받고, 젊은 손님들을 끌어들일 만한 방법을 찾았어야 했는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그렇게 시대에 발맞춰 변화에 잘 적응해서 멋지게 살아남은 명물 시장들도 분명히 도처에 존재하니까요. 결국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건 경쟁자를 힘으로 밀어낸 사람이 아니라, 변화에 유연하게 올라탄 사람인 법입니다.

지금도 포항 영일대 해수욕장 앞에 가면 그 거대했던 유령 건물의 흔적을 아련하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단 하루도 스스로 불을 켜보지 못했던 슬픈 건물 말이죠. 짓는 데는 무려 1,475억 원이라는 거금이 들었지만, 그 누구도 단 한 번도 써 보지 못한 비운의 건물입니다. 누군가에게는 한때 짜릿한 승리의 찬란한 상징이었겠지만, 결국에는 우리 모두의 패배를 아프게 증언하는 거대한 기념비가 되어 버린 건물이죠. 그 텅 빈 건물이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묵직한 질문은 어쩌면 이겁니다. “당신이 그토록 소중하게 지키려는 그것, 정말 지금 그 방법이 맞습니까?”

image

여기까지 포항 두호동 유령 건물에 얽힌 아주 씁쓸하고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흥미로운 이야기였습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어쩌면 이와 비슷한 안타까운 일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똑같이 벌어지고 있을지 모릅니다. 눈앞에 작은 상대와 죽기 살기로 싸우느라, 정작 뒤에서 밀려오는 진짜 중요한 흐름을 놓치는 일 말이죠. 오늘 들려 드린 이야기가 세상을 조금은 더 넓고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긴 이야기 끝까지 몰입해서 함께 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음번에도 더 흥미진하고 깊이 있는 통찰이 가득한 이야기로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